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할머니 슬픈 것

옛날에 할머니하고 어떤 것들을 보내면서 시간을 보내고 지냈냐 하는 것들이 딱히 많이 기억은 안 난다.

할머니가 내가 심심한다고 할 때마다 같이 풍선배구를 많이 해주었던 기억이 나고.

계양구에서 옆에 사셨을 때와 같이 사실 때 내가 성당을 데려다드리던 것들이 생각나고.
맛없는데 자꾸 음식 해주신다고 하는 게 싫었던 생각이 나고.
빨래 막 해서 옷 몇 벌 버린 것 같은 게 속상했던 기억이 나고.

그래도 같이 아버지랑 다 앉아서 막걸리 마시고.
매년 초마다 토정비결 책 사다드리면 그거로 다 같이 봐주시던 것들.
그러면서 항상 뭐 내가 하는 거면 다 좋다고 하시던 것이 생각나고.
일본어 잘하시고, 집에 재밌던 일본책들 많았는데 눈이 나빠져서 이제 좀 못 본다고 속상해하시는 게 생각나고.
코로나 때 매일매일 혼자서 힘들어하시니까 아침에 출근하면서 15분씩 걸어가는 길에서 항상 전화드렸던 기억이 나고.
그게 천천히 시간관념이 없어지면서 내가 전화를 했던가 하시면서 주말에도 전화 오고, 새벽에도 전화 오면서 강박증처럼 이어지시던 것 생각나고.
회사에서 짜증나는 일이 있고, 하던 일이 잘 안 되면 김포공항에 있는 할머니 집 가서 그냥 짜증내고, 집이 이게 뭐냐고 투정 부리고 뭐라고 해도.
언제나 내 예삐, 제일 예쁜 손자였던 생각이 나고.
투표날마다 나 기다리면서 내가 모시고 투표하러 다니던 것 생각나고.
최근에는 일산에 있던 요양원에서 내 생일날 같이 초밥 먹으러 휠체어 끌고 내가 모시고 다녀온 것 생각나고.
치매가 처음 천천히 오시면서 기억을 잘 못할 때는 내가 돌아가신 아버지라고, 할머니 아들이라고 놀리고.
내가 누군지 맞춰보라고 놀리고.
엄청 화도 내고, 기억을 잃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속상해하고 그랬던 것 같다.

한두 달 전쯤부터는 조금 준비 중이었던 것 같다.
차근차근 무언가 느껴지는 죽음의 냄새 같은 게 있었고.
초점 잃은 눈과, 이야기하지 못하는 입.
할머니 이마에 두고, 뽀뽀하면서 울었던 기억이 내게 마지막.

좀 체념하던 시기였던 것 같다.
그래서 막상 임종을 앞두고는 크게 슬프진 않았다.

사람은 쉽게 죽지 않는다. 인간의 생명은 참 위대하다.

할머니의 심장은 낮은 혈압에도 살겠다고 120 이상의 heartbeat으로 뛰고 있다.
컴퓨터 전원 켜고 끄듯이 딱 하고 죽을 수 있는 게 아니라.
죽고 싶어도 이렇게 팔짝팔짝 뛰고 있는 심장을 보면서.
정빈이가 태어나고 새 생명이 태어났을 때의 감동 못지않게.
사람이 갖고 있는 생명력에 대해 경이로움이 들고, 또 위대함을 다시 느꼈다.

할 만큼 다했다 나는.
그래서 아쉽지 않고, 고생하셨다고, 감사하다고. 생각이 든다.
가실 때 되셨고, 너무 사는 게 고생이고 고역이시니까.
얼른 편하게 가셨으면 좋겠다. 잘 된 일이다. 라는 생각을 한다.

그리고 뭐 이제는 할머니한테 가서 아빠한테 어쩌구 저쩌구, 이런 얘기는 굳이 하고 싶지 않더라.

다만, 우리 할머니 고생했어요. 고마워요.
사랑해요 정말

예전에 동교동의 내 시절이 생각나고 그립고 그렇다.
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이 사라지고 기억이 사라지는 게 매우 아쉽다.

라디오에서 지나간 일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다고 해서.
갑자기 감성폭발해져서 글 써진다.

사실 어제 밤에 계속 잠이 안 오긴 했다.
그리고 위에 글들을 작성하다 보니 그냥 눈물이 엄청 난다.

왜 살까.